현대차 헤리티지 라이브 1화 관람 후기 ├ 자동차 이야기




11월 18일 지난 토요일,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현대차 헤리티지 라이브 1화 행사를 다녀왔습니다. 1967년 창사 이래 현대차도 어느덧 2017년 금년부로 50주년을 맞았습니다. 마차를 자동차로 바꾼 100년이 넘는 역사의 선진국 자동차 메이커들과 대비하면 현대차의 역사는 여전히 보잘것 없어보일 수 있으나, 한국 근현대사의 격변을 함께하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차들을 만들 수 있을만큼 급격한 성장을 일군 지난 50년 현대차의 역사는 매우 값진 것이며, 결코 소홀히 여겨선 안될 유산이죠. 이번 헤리티지 라이브를 통해 현대차의 역사와 미래를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나눠본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행사 장소는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의 3층 강당. 토크쇼 전후에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이번 헤리티지 라이브의 주제인 "현대차의 고급차 역사"를 대표하는 3개 차종(포드 20M, 그라나다, 그랜저)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왼쪽에서부터 배한성 성우님, 나윤석 칼럼니스트님, 현대차 브랜드전략팀 권규혁 차장님

이번 헤리티지카 토크쇼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경력과 배경을 가진 세 분이 연사로 나와주셨습니다. 배한성 성우님은 경력 50년의 베테랑 성우이자, BMW E30 3시리즈를 보유하고 있는 올드카 마니아시기도 합니다. 나윤석 칼럼니스트님은 우리나라 최고의 자동차 오피니언 리더로 꼽히는 분이시고, 권규혁 차장님은 풍딩이라는 필명으로 자동차 웹툰과 자동차 칼럼을 기고하시다가 현재는 현대차 브랜드전략팀에 재직 중이며, 이번 헤리티지 라이브 행사 기획과 진행을 겸하게 계십니다.


현대차의 창업주인 故 정주영 회장과 첫차인 코티나.

1900년대 중반 우리나라 여건상 외국 자동차 제조사와의 제휴 없이는 자동차 공장 설립 인가가 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정주영 회장이 제휴처로 검토했던 선진 자동차메이커 중 GM은 단순 제휴가 아닌 완전한 지배를 노리고 있어서 제휴를 포기했고, 포드로 결정되었습니다. 오일쇼크 이전 시기의 미국차들은 덩치도 크고 대배기량이라 한국 도로, 세제 여건에 맞지 않았는데, 미국포드와 유럽포드가 만드는 차가 서로 달라서 상대적으로 작은 차가 많았던 유럽포드의 차를 제휴 상대로 삼은 것입니다.


현대차는 유럽포드와의 제휴로 1968년부터 코티나를 조립생산하였으며, 20M 역시 마찬가지로 유럽포드의 차인 토너스(Taunus) P7 중 국내실정에 적합한 V6 2.0리터 엔진 사양의 20M 모델을 조립생산한 형태입니다.



현대차가 처음으로 유럽포드와의 제휴로 포드 차를 조립생산하던 60년대 중후반경의 물가를 오늘날과 비교해 환산하면 1/100 수준. 짜장면이 60원이었던 시절 현대차가 조립생산한 고급차 포드 20M이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200만원 정도 했는데, 오늘날 가격으로 치면 2억원을 훌쩍 넘는 차였다는 것이죠.


당대 그만한 차를 살 수 있는 사람은 나라에서 정말 극소수의 부유층 외엔 없었고, 그렇다보니 이 차 자체가 귀빈의 상징처럼 여겨졌습니다. 1974년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에서 범인이 사건장소 조선호텔까지 타고 간 차가 포드 20M이었는데, 승차입장카드도 없었지만 포드 20M을 타고 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권총을 숨긴 채 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포드 20M은 한국 최초로 V6 엔진을 탑재한 고급차였고, 아우토반의 고장 독일에서 개발된 차였던만큼 고속주행 능력이 당대 한국에 들어오던 차들 대비 우수하다는 특성이 때마침 개통된 경부고속도로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하지만 좀 비싸다는 집 한채값보다도 비싼 가격 때문에 판매고는 매우 작았으며, 70년대 초 석유파동 발생으로 나라에서 6기통 이상의 고급차 판매를 금지시켜 포드 20M은 단명하고 맙니다.



포드 20M의 다음으로 현대차 고급차의 맥을 잇는 차는 바로 그라나다.



오일쇼크로 인해 6기통 이상 승용차 생산 불허 이후 한동안 현대차엔 고급차 맥이 끊겼는데, 1978년에 다시 인가를 받아 V6 2.0리터 엔진을 탑재한 유럽포드의 2세대 그라나다를 조립생산하게 됩니다. 2차 오일쇼크로 인해 4기통 모델이 급히 파생되는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그라나다는 "도로의 연탄재를 뭉개면서 지나간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낮은 차체에 직선으로 심플하게 정돈된 느낌을 주는 디자인을 구현한 당대 최고 고급차였습니다.


1985년 그라나다의 단종 직전 가격은 당시 기준으로 약 2천만원이 안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이야 2,000만원을 밑도는 차라고 해봐야 아반떼가 생각나지만 당시 2천만원돈은 강남 아파트 시세의 거의 두배 수준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시엔 6기통 넘는 차들에 대해서는 사치품으로 분류되었고, 국산화율도 60% 미만으로 관세도 비쌌을 뿐더러 자동차세가 엄청나게 가산되어, 3개월당 내야될 세금이 80년대 대기업 대졸자 초임의 두배만큼이었습니다. 사서 주차장에 모셔만 놔도 월급의 2/3만큼이 세금으로 나가는 이 차는 정말 아무나 몰 수 없는 존재였다고 합니다.


제가 고등학생이었던 2005년에 집 근처 카센터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그라나다. 제 기억에 그라나다를 거리에서 실물로 본건 이 차가 유일했습니다. 기록 수단은 200만화소짜리 평범한 디지털카메라뿐이었는데, 좀 더 자세히 사진을 남겨두지 못한게 아깝습니다.


그라나다의 후계는 오늘날까지 한국 고급차의 대명사인 그랜저가 잇게 됩니다.


원래는 그라나다의 차체를 그대로 활용해 부품 국산화율을 높히고 디자인만 이탈디자인에 의뢰해 바꾸는 수준의 마이너체인지를 계획하고 있었으나, 1980년대 말경 수입차 진입장벽이 해제에 따라 경쟁력을 제대로 갖춤과 동시에 국산화율을 높혀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마이너체인지안 대신 일본 미츠비시자동차와의 공동개발로 방향을 바꿔, 미츠비시는 데보네어를, 현대는 그랜저라는 신차를 출시하게 됩니다.


그랜저의 특징은 전륜구동이라는 점. FF구동은 넓은 실내공간과 연비 향상을 모두 꾀할 수 있어 자동차 업계에서 예나 지금이나 많이 쓰이는 방식이지만 선대의 포드 20M, 그라나다가 FR구동계를 썼고, 당시에도 고급차는 무조건 후륜구동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했습니다. 대우 로얄살롱같은 경쟁모델도 후륜구동인 마당에 그랜저가 FF(전륜구동)를 사용한다는건 당시로선 상당히 모험적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오페라글래스, 풀플랫시트, 전자제어 MPI 엔진 등을 최초 적용하며 스타일과 기술 등 여러모로 당대 고급차 중 가장 앞선 모습을 보여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이후 그랜저는 쇼퍼드리븐 럭셔리세단으로서의 풍채와 고급스러움을 더욱 강화한 2세대(뉴그랜저)에서도 부의 상징으로서의 지위를 굳혔습니다. 하이오너 고급세단으로서의 영역을 새로이 개척한 3세대(XG)에 이어 최신의 6세대(IG) 들어 제네시스 브랜드의 분화로 인해 최상위 고급차의 지위에서 많이 내려왔지만, 잘 팔릴 때엔 국내 판매 월 1만대를 우습게 넘길 정도로 대형차 영역에서 압도적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옛날 이야기라 젊은세대 청중들 사이에선 흥미가 떨어질 것이라 우려되기도 했는데, 배한성 성우님이 중간중간 재미있는 성대모사와 에피소드를 풀어주며 분위기를 띄워주셨고, 오히려 사진의 초등학생 나이 꼬마도 아빠와 함께 흥미롭게 옛날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게 무척 인상깊었습니다. 청중들과의 활발한 소통으로 2시간에 걸친 토크쇼가 정말 하나도 안 지루하게 끝났습니다.

자동차산업 주도국가를 서양(미국/유럽)과 동양(한국/일본)으로 나눠본다면, 서양은 인류 최초로 자동차를 발명해 이동수단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킨만큼 역사와 내공이 깊으며, 동양은 후발주자로서 자국 및 전세계에 만들어 팔기 위해 자동차 제조를 시작했습니다. 때문에 동양의 자동차도 저렴한 대중차 영역에서는 패스트 팔로잉과 자신의 강점을 특화시키며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지만, 중~대형 고급차로 갈수록 아무리 멋진 디자인과 첨단의 장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무장해도 자신의 영역 수성이 쉽지 않습니다. 이는 서양의 고급차들 대비 더 근사한 스토리를 담기 어렵기 때문이죠. 지금이라도 현대차가 창사 50주년을 맞아 과거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소비자들과 그 유산에 대한 스토리를 나누기 시작했다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의 인식 개선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헤리티지를 제대로 알아야 현대차그룹 스스로의 미래도 잘 개척해나갈 수 있는 법이죠.


행사가 끝나고 모터스튜디오 지하주차장에 한데 모인 현대차의 3代 고급차.

다음 헤리티지 라이브 2회차는 12월 16일 같은곳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스쿠프에서부터 시작된 현대차의 스포츠카 헤리티지를 다룬다고 합니다. 입장료는 1만원이지만, 1회차 관객 전원에게 포니 마우스패드와 1:38 모형차를 기본으로 나눠줬던 것을 생각하면 입장료 이상으로 충분히 혜택을 돌려받는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사전 참가접수는 필수이니, 일정이 맞으시면 함께하시는걸 적극 권해드립니다.




덧글

  • 위장효과 2017/11/23 11:58 # 답글

    그러고보니 몇 년전에 뭔 날인지 에스컬레이드, 란에보, 임프레자, 이클립스에 화룡점정으로 데보네어까지 다 길거리에서 목격한 날이 있었습지요...그 데보네어는 진짜 관리 잘 했더만.

    제일 웃겼던 건 그 차를 중심으로 해서 HG, XG, TG에 하나 건너 각쿠스가 신호대기하고 있었단 겁니다...ㅋㅋㅋㅋ
  • 아방가르드 2017/11/26 11:09 #

    무슨 카쇼 현장도 아니고 대단한 조합이군요 ㅋㅋ
    그랜저의 세대별 라인업은 저희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도 은근히 자주 목격하게 된다죠. 각그랜저 빼고 모든 그랜저가 하나씩 있다보니 나란히 주차되는걸 보면 박물관이 따로 없는 비주얼;
  • 루루카 2017/11/23 12:34 # 답글

    그랜져... 페이스 리프트 모델이군요? 첫 그랜저가 안 나온게 살짝 아쉽네요.
    처음 출시 됐을 때, 구경했던 기억이...
    (당시 저희 집 차는 포니2 CX...)
    저 그랜져는 요즘도 가끔은 눈에 띄는편이죠?

    그라나다는 그래도 좀 봤었던 기억이 있고요.
  • 아방가르드 2017/11/26 11:10 #

    저는 그라나다를 이번 행사장 말고는 태어나서 딱 한번밖에 본적이 없다보니 아직까지도 신기합니다
  • 제이 2017/11/23 16:39 # 답글

    예에에에~전에 권규혁 님이 그리신 달력 몇 개가 본가에 있는데..현대로 가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ㅋ
  • 아방가르드 2017/11/26 11:11 #

    저도 언젠가부터 작품활동이 뜸해지셔서 어디 가셨나 했더니 현대차에서 헤리티지 관련 일을 하고 계실줄은..
  • 폴라 2017/12/02 01:23 # 답글

    뷰롱이가 나온다니 ..2회차에서는 반드시 참석을...신청 아직 않받죠?
  • 아방가르드 2017/12/02 16:45 #

    모터스튜디오 고양 홈페이지에서 예매 오픈되었습니다~
  • 2017/12/15 22:4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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